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롸이언의 인생이야기 @ Innovate yourse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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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롸이언
롸이언 이야기 l 2009/07/08 19:01

하꼬야 시푸드

최근 서울 종로에 2600㎡(약 800평)짜리 대규모 식당이 생겼다. 시푸드 레스토랑 ‘하꼬야’다. 근래엔 보기 드문 ‘도발적인’ 규모다. 요즘 같은 불황에 이렇게 규모로 치고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종목이 ‘시푸드 뷔페’였기 때문이다. 시푸드 뷔페는 최근 몇 년 새 업체 간의 전투에 가까운 영역 다툼으로 많은 업체가 들고 나는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이젠 나름의 시장질서를 잡으면서 외식 업계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5월은 가족끼리 한 번은 외식하는 달. 점심시간 2만원대에 초밥부터 다른 요리와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 시푸드 레스토랑은 가족 외식 장소로 가장 많이 고려되는 곳이다. 간다면 알고 가는 게 이익이다. 시내의 유명 시푸드 레스토랑을 돌며 식당마다의 특징을 짚어봤다.

글=박지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오션스타
●하꼬야 시푸드 600석의 대규모 시푸드 뷔페다. 강남역의 마키노차야를 하는 LF푸드가 3월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에 열었다. 마키노차야가 싱싱한 생해산물로 인기를 끌었다면, 이 집에서 꼭 먹고 와야 하는 메뉴는 와규 스테이크, 하꼬야 라면, 아이스 홍시, 군산 횟집에서 직송하는 간장게장과 김치다. 이달엔 광어 이벤트를 한다. 시간 제약(2시간)이 있다. 저녁에만 나오는 크랩과 대게는 6시30분, 7시20분, 8시30분 등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달엔 20% 할인 행사를 한다. 평일 점심 2만6000원, 저녁·주말·공휴일 3만9000원, www.hakoya.co.kr

●무스쿠스 국내 시푸드 뷔페의 시초 격이다.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1호 점에 이어 5년 사이 역삼·삼성·잠실 등 서울 중심 상권에 9호 점까지 냈다. 철저히 일식 해산물 요리에 초점을 맞춰 매니어 층이 있다. 4명의 파티시에가 직접 구워내는 디저트도 이곳의 자랑이다. 평일 점심 2만원, 저녁 2만8000원, 주말 2만9500원, 02-6282-2970, www.muscus.co.kr

●토다이 뉴욕·홍콩·하와이 등에 매장이 있는 뷔페 레스토랑. 참치·연어·방어·문어 등 원하는 해산물을 그 자리에서 썰어 준다. 회를 즐기고 싶다면 이만 한 곳도 없다. 시간대를 잘 맞추면 1m는 족히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참치를 직접 손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회나 초밥 외에도 백합·소라·고둥을 쪄낸 찜요리나 석쇠구이, 철판구이, 샤브샤브 등 해산물 요리 종류가 많다. 평일 점심 2만3000원, 저녁·주말 3만4000원, 02-553-6886, www.todai.co.kr

보노보노
●마리스코 다른 시푸드 뷔페에 비해 가격이 비교적 싼 게 장점이다. 왕십리역·대학로·사당동 등 3곳에 있고, 초밥과 예쁜 모양의 롤이 주 메뉴다. 회는 요리사가 앞에서 직접 썰어 준다. 요즘엔 광어·농어·방어·숭어 등이 주로 나온다. 태국 음식인 ‘푸팟퐁 커리’(게볶음요리)와 ‘톰양쿵’(수프)도 먹을 만하다. 소시지·닭꼬치· 자장면· 메밀국수 등도 있다. 평일 점심 1만7000원, 저녁 2만4000원, 주말 2만5000원. 02-3675-9990, www.mariscos.co.kr

●보노보노 신세계푸드가 운영한다. 일본 초밥 전문기업 지요다스시와 기술제휴를 하고 요리법을 전수받아 본토의 맛을 가장 근접하게 재현한다. 30가지가 넘는 초밥과 롤을 즉석에서 선보인다. 초밥집이지만 이 집에서 가장 값 나가는 건 샐러드다. 유기농 채소만 내기 때문에 샐러드만 두 접시를 먹어도 본전은 뽑는다. 접시가 8인치로 다소 작다. 여러 음식을 섞지 말고 한 종류의 음식만 담아 먹는 게 맛있다는 나름의 미식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평일 점심 2만5000원, 저녁·주말 3만7000원, 02-3288-8080, www.bonobono.co.kr

●시푸드오션 CJ푸드빌에서 운영한다. 발산역 근처에 있어 인근 주택가에서 오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다. 뷔페식 시푸드 바와 20여 가지가 넘는 단품 메뉴를 판다. 비빔밥 코너에서는 해삼 창자(고노와다)와 갖가지 채소, 해산물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홍합탕과 직접 갈아주는 생과일 주스가 별미. 평일 점심 1만8000원, 저녁 2만3000원, 주말 2만5000원, 02-2668-2005, www.seafoodocean.co.kr

●오션스타 BBQ로 유명한 제너시스가 목동에 열었다. 즉석요리 코너가 눈에 특징. 철판·면 요리 외에도 파르메산 통치즈에 원하는 채소를 직접 버무려 주는 샐러드 서비스와 치킨 메뉴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이 업계에선 처음으로 생선용 뷔페 접시를 시원하게 보관해 냉동실에서 갓 꺼낸 듯한 접시에 스시를 담을 수 있다. 평일 점심 1만9900원, 저녁 2만7900원, 주말 점심 2만9900원, 02-2061-0609, www.ioceanstar.co.kr

출처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5/07/3371978.html?cloc=n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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롸이언 이야기 l 2009/05/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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롸이언 이야기 l 2008/07/3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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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롸이언
롸이언 이야기 l 2008/02/04 17:44

축구를 했던것이 정말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든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 앉고 싶었는데..ㅎㅎ 별로 뛰지도 않았지만..

20분이 우찌 이렇게 힘드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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롸이언 이야기 l 2007/06/06 12:44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이것은 애플 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연설 내용입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오늘 저는 제 삶에서 세가지 이야기를 하기 원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세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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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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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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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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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만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학교를 떠나기 전에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학교 주위에 머물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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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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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젊었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게 입양되기를 강하게 원하셨고,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제가 출생했을 때 최후의 순간에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고 결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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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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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었던 저의 부모님은 한밤중에 전화를 받아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던 남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 아이를 원하십니까?" 그들은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제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제 아버지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최종 입양 문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저의 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몇달 후에야 마음이 누그러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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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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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도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 대학에서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고, 대학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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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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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그것은 제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부터 저는 흥미없던 필수 과정 수업들을 수강하지 않을 수 있었고, 흥미있어 보이는 수업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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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cents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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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가 없어서 친구집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팔아 5센트씩 모았으며, 매주 일요일 밤에 한번씩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도시를 가로질러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실수했던 많은 것들이 후에는 매우 가치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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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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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서예)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와 모든 서랍의 라벨은 손으로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퇴를 했고 따라서 정규과정을 수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글씨를 어떻게 아름답게 쓰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체(serif)와 산세리프체(san serif)를 배웠으며, 다른 글자 조합간의 전체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서체는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서,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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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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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 중에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우리가 최초의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그 모든 것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맥킨토시의 디자인에 이것을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맥킨토시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서 단지 한 강좌에 불과했지만 그 서체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킨토시는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있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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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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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스가 맥킨토시를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지금 그들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에 다닐 때는 미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를 돌아보니 그것은 아주 명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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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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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의 사건들만을 현재와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튼 여러분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즉 직감, 운명, 삶, 인연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이것은 제 삶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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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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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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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발견했기 때문에 운이 좋았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에서 시작한, 단지 2명에서 시작하여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인 매킨토시를 1년 더 일찍(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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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제가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 해쯤에는 일이 매우 잘 진행되었습니다. .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하지만 그때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이 되었고, 저는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모든 삶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그것은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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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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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전달된 바통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노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실리콘밸리에서 쫓겨났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무엇인가가 분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과의 사건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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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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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 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 확신하는 것만은 제외하고. 이것이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들어서도록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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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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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대단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일의 주목할만한 진전으로, 애플은 NeXT를 매입했고, 저는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NeXT에서 개발한 기술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에 있어서 핵심입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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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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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거라고 강하게 확신합니다. 제가 해고된 일은 저에게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는 그런 쓴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삶이라는 벽돌이 당신의 머리를 때리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제가 한 일을 사랑한 것이 저를 계속 유지하게 했던 유일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한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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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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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일은 여러분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당신이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이 언제 사랑하는 일을 발견하게 될 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것은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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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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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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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당신의 매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당신의 삶은 가장 확실하게 옳을 것입니다"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정말 하길 원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여러날 연속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마다,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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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곧 죽게 될거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도와준 우연히 마주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거의 모든 것 - 모든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이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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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곧 죽게 될거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알기론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거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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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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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시 30분에 정밀검사를 받았고,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이것이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은 의사가 말하는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몇개월 내에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저의 죽음이 제 가족을 위해 가능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확실히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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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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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암 진단을 받고 하루를 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이후 저는 생체 조직 절편 검사를 했습니다. 이 검사는 목으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그것을 위를 통해서 창자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검사였으며,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하는 검사였습니다. 저는 진정제를 복용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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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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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깝게 직면했던 사건이었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에도 죽음에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사건을 견뎌냈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에게 좀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순수하게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유익한 개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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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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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에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에서 있을법한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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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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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 함정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들 때문에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심으로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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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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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놀라운 간행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세대에 성경과 같은 필독서였습니다. 그 간행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에 사는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그의 시적인 솜씨로 그 책에 삶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나 데스크탑에 의해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간행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구글(Google)이 나오기 전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로 넘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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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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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wart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간행물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그들은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당시 저는 여러분의 나이었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 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여러분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계속해서 히치하이킹하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 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제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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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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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all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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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롸이언
롸이언 이야기 l 2007/04/08 21:08
Blog를 사용한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Blog를 통해 평소 내 머리속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시간적으로나 마음적으로 행동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제 공간이 넓어진 Daum TiStory로 이사왔다. 트래픽 걱정도 없고, DB나 계정공간의 크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금상첨화인 것은 내 개인적인 도메인을 지운해준다는 것이다. 공짜로...

그래서 내 Blog 접속은 http://blog.intoself.net 로 정했다.
앞으로 내 놀이터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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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롸이언
롸이언 이야기 l 2007/01/1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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